프린세스 메이커 3을 네 번 구입한 추억

12살에 프린세스 메이커 2를 접한 이후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는 전부 다 플레이해봤고 하나하나 다른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제일 징한 추억을 갖고 있는 건 역시 네 번 산 프린세스 메이커 3다.

프메 3가 발매된 게 아마도 1998년 봄이었던가?

당시 중학교에 갓 입학했던 나는 생애 첫 중간고사 평균 90점을 넘기면 프메 3를 사 달라고 엄마에게 말했다. 갓 청소년이 되어 얼어붙어 있던 아이들을 위한 위로 차원으로 시험을 쉽게 낸 건지, 어떻게든 평균 90점을 넘긴 덕분에 프린세스 메이커 3 패키지는 내 손에 들어왔다. 당시 가격이 삼만 칠천원이었던가. 쌀값이랑 맞먹는 녀석인지라, 엄마는 절대 이 물건을 내가 갖고 있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

커다랗고 두꺼운 패키지 속 내용물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씨디가 두 장 들어있었고, 씨디 두 장인 게임 시디는 처음 접해서 '두장짜리 씨디는 어떻게 까는 거지? 두 장을 한꺼번에 넣는 건가?'하고 덜덜덜 떨었던 기억은 난다.


여튼 어리버리한 중 1짜리 여자애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지는 요정 딸내미를 열심히 키워서 아이보기 아르바이트생, 메이드, 요정 등등을 줄기차게 키워 냈고……(요정 엔딩, 의도한 것도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나왔다. 재주도 좋다)



딸 키우기에 슬슬 질려 갈 때쯤, 즉 1999년.

V챔프라는 게임잡지 창간 1주년 부록으로 프린세스 메이커 3 번들시디가 나왔다. ㅅㅂㄹㅁ!!!!


발매 1년밖에 안 되고 가격도 거의 4만원에서 줄줄줄 떨어져 가고 있는 게임을 부록으로 냈다고 욕도 좀 먹었던 것 같은데. 여튼 조금 억울해 하고 있을 때 친구 한 명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V챔프라는 게임잡지 부록으로 프린세스 메이커 3를 준다는데, 우리 돈 모아서 사지 않을래?"




애시당초 내게는 잡지를 공구할 이유가 없었지만, 난 어머니가 말한 [네가 프메 3를 갖고 있다는 것을 주위에 알리지 마라]라는 말을 착실하게 지키고 있었기에 그 친구에게 돈을 보태 주었다.

억울한 건 그 녀석이 낸 돈이 제일 많았았다는 이유로, 같이 플레이해 본 기억도 없이 그냥 그 친구 물건이 되어버렸다는 거다.



좀 어거지같지만 그렇게 돈 낸 게 두 번째 구입한 추억.





게임 패키지는 가끔 돈 모아서 사고, 매달 서점에 들러서 게임잡지 부록 CD를 열심히 체크하던 중학시절 후반. 내 친구 몇 명도, 가까운 친척들도 게임은 좋아했다. 서로 게임CD 빌려주면서 플레이하고 그렇게 살았는데. 정신차리고 보니까 내 게임 CD는 거의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있었다.

(혹시 지금 이 글 보고 있다면 자수해라. 파랜드 택틱스 2, 아랑전설 3, 프린세스 메이커 3, 마리오넷 컴퍼니, 스피리츄얼 소울 1,2 빌려가서 안 돌려준 인간들!!!!)


그렇게 프린세스 메이커 3 CD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고등학교로 들어가면서 취미생활은 컴퓨터 앞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게임에서 독서실에서도 볼 수 있는 만화 쪽으로 옮겨갔고 패키지게임에 대한 관심사는 좀 사그라들었다.



공부는 더럽게 하기 싫은 고2 시절.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독서실 앞 커다란 마트로 마실을 나갔다가 쥬얼 CD를 쌓아놓고 파는 걸 발견했다. 별 관심도 없고 재미없어보이는 CD들 사이 눈에 띈 건 프린세스 메이커 3 쥬얼. 무려 종이 껍데기도 없고, 투명한 CD 케이스에 가을 바캉스를 나간 딸내미가 나무에 기대어 누운 그림만 프린트된 CD 한장 덩그러니 들어 있는 녀석을 8천원에 팔고 있었다. 갑자기 딸내미에 대한 추억과 사랑이 스멀스멀 피어 올라 널름 사버렸다. 그리고 독서실에서 집에 올 때마다 가끔 키워주곤 했었다.



고3때 수능 한 번 말아먹고 재수생활이 끝난 뒤.
대학에 붙고 나서 컴퓨터를 한 대 새로 샀다. 때는 2005년. 다들 윈도우 XP를 쓰던 때. 내가 갖게 된 쌔끈날씬한 깜장 컴퓨터 역시 윈도우 XP가 깔려 있었다. 리포트 쓰기에도 인터넷 돌아다니기에도 온라인 게임하기에도 적절한 녀석.

그러던 어느 시험기간. 공부하기 싫어져서 갖고 있던 게임 CD를 뒤적거리다가 프메 3 CD를 꺼냈다. 오래간만에 딸내미 키우면서 앨범이나 잔뜩 채워야지, 하는 야망으로 게임을 인스톨, 시작을 눌렀지만.



……XP에서는 안 돌아간다.


XP에서 돌리는 방법을 피눈물을 흘리며 찾아다녔다. 내가 거의 10년간 잊지 못해 계속 곁에 두었던 딸내미인데, 윈도우 XP에서는 절대 플레이할 수 없다는 말만 잔뜩 있었다. 방법은 하나. [걍 XP에서 돌아가게 만든 버전 사세요]



내가 정말 이걸 또 사야돼? 1998년부터 몇 번을 샀는데? XP에서 안 돌아가는 고전게임 많은데 아예 윈98 깔려 있는 노트북을 사 버릴까?




하지만 결국 세 번째 딸 앞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우송료 포함 대강 만 원에 질렀고(세 번째 딸을 다시 볼 수 있고, 키울 수 있는 건데 아주 싸잖아!!) 한 달 정도는 행복하게 즐길 수 있었다.



프메 3은 프메 2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한다. 단순한 대화 뿐만이 아니라 정말 풍부하고 다양한 표정, 타 시리즈를 압도하는 딸과의 커뮤니케이션, 10년 가까운 시간을 플레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다 보지 못한 이벤트 + 엔딩, 아버지의 직업에 따라 어떤 친구를 사귀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딸의 반응 또는 엔딩 멘트 등등. 옷이나 기타 아이템 수는 적어서 아쉽다는 생각도 하지만 프메 시리즈 중 가장 다양하게 변화하는 딸의 모습만으로도 그냥 녹아버려 줄 수 있다.


요 아래 이미지가 내가 네 번째로 데려온 세 번째 딸내미.
본의 아니게 다른 딸내미 둘과 같이 데려오긴 했지만.
중1때 생애 처음으로 질렀던 프메 3 패키지가 대체 어디로 갔는지, 쥬얼시디를 앞에 두고 이런 말 하는 것도 좀 미묘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가, 이번에는 정말 오래오래 같이 하자.


사족.
세 번째로 지른 딸내미(윈95, 98용)는 또 잃어버렸다. 어딜 간거야 O<-<

by 으릉캬릉 | 2007/05/02 20:18 | 게임 | 트랙백 | 덧글(13)

트랙백 주소 : http://toxicfree.egloos.com/tb/336829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시리오르 at 2007/05/02 20:31
전 프메2를 우려먹고 우려먹어 벗기고(충격인것은 너무 상세하게 표연되었...) 사창가에 던지기 까지 했죠...
Commented by 지읒 at 2007/05/02 22:45
시리오르// 그거 남게이머들을 위한 가이낙스의 배려(?)라는 말이 있더군요 ㅡ_ㅡ;

여튼 저도 프메2는 초~중딩 시절에 1년 반 가까이 즐긴 것 같습니다. 무사수행에 숨겨진 게 참 많았었죠.. 3도 재밌게 했고. 근데 4는 완전 실망 orz 공주 엔딩 띡 보고 플레이 중단. 일본에서 5가 나온 모양이던데 패키지 게임인지라 한글화가 되어줄지 알 수가 없네요. 일본어를 배우든가 해야지 서러워서 원..
Commented by 으릉캬릉 at 2007/05/02 22:52
시리오르 // 옷 벗겨지는 것에 대해서는 눈물나는 추억이 있긴 한데 일단 제끼고...
어째서인지 사춘기 시절 딸내미 배드엔딩은 꼭 일부러 만들어봤던 것 같군요.

지읒 // 5월 3일인가 4일인가 프린세스 메이커 5 한글판으로 나옵니다 ^^
(돈 뽑아놓고 대기중 두근두근)
가격은 어쨰 3만 8천원이더군요; 9년 전 게임 패키지 가격이랑 똑같다니...
4는.... 프메 시리즈로 쳐주기도 싫어요 O<-<
Commented by 골디 at 2007/05/03 11:59
저도 잡지 부록으로 받아서 해봤엇죠....
어찌된일인지 전용CG가 있는 앤딩은 한번도 못본 추억이....
......
맨날 광산에서 일만 시키니까 광부가 되더라구요.....
Commented by 으릉캬릉 at 2007/05/05 20:50
골디 // ㄷㄷㄷ;;;
광산이 돈을 잘 주긴 하지만.. ;ㅅ;
Commented by 지읒 at 2007/05/06 13:06
앗! 한국 발매! 이제서야 알았군요 ㅎㅎㅎㅎㅎ 이미 발매된 모양이네요. 만세ㅡ
Commented by 으릉캬릉 at 2007/05/06 15:49
지읒 // 무슨 패치작업 하느라 기한 결정 없이 늦춰졌대요... 아놔 O<-< ㅠㅠ
Commented by 이리너 at 2007/06/27 12:25
음..........하나 염장글 같지만 열정을 대단하시네요 ^^
이번달에 게임한국이란 3500짜리 잡지 부록이 프린세스메이커입니다..ㅡ.ㅡ...자 5번째 구매하시는 겁니다 ^^
Commented by 나동안이다 at 2007/08/02 03:31
님 정말 웃기네요... 님이 웃기다는것도 있지만(퍽퍽!) 저도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돈해요 ㅜㅜ 저도 정품시디로산거 부록으로 나왔을때 그 허무함과 배신감이란... 그 마음을 달래려고 님과같이 저도 잡지막샀었답니당~ 그런데 프메는 무사수행있는 2탄이 정말 대박이라는 ㅠㅠ 3탄은 2탄만쭉해오다 막상하려니깐 엄청 해매었다는... 딸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도 가물가물
Commented by 나동안이다 at 2007/08/02 03:32
그런데 여기 어디지?? 여기머하는데인가요 ㅡㅡ
Commented by 으릉캬릉 at 2007/08/02 23:40
나동안이다 // 여기는 평범하게 게으르게 운영하는 평범한 블로그입니다만.....
나동안이다 님의 정체가 더 궁금해요 ;ㅅ;

아 그 잡지부록 진짜 ㅠㅠ
사면 무슨 화보집 비슷한 것도 줬던 것 같은데..;
Commented by 님아 at 2008/11/02 19:51
xp는 98이랑 말이나 직업이름이 달라서 ㅠㅠ 졀라슬픔..
짱구도 많이헀었는데 인간들이 옛낭만을몰라
Commented by 커봤자아이 at 2008/12/30 16:22
나도 97년도엔가 아랑전설3랑 마도전기, 플로트랜드 스토리, 대해선 등 했었는데 ㅠㅠ 그립다.

:         :

:

비공개 덧글